
1875년,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이제 막 규칙을 갖추던 그 해 — 프랑스 리옹의 한 공방에서 세계 최초의 테니스 스트링이 탄생했습니다. 스트링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라파엘 나달의 22번 그랜드슬램 우승과 30년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라켓 한 자루 없이 120년을 버텨온 회사가, 어떻게 윌슨과 헤드가 지배하던 라켓 시장을 단번에 뒤흔들었는지. 테니스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제대로 알아두어야 할 브랜드, 바볼랏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피에르 바볼랏은 악기 현과 수술용 실을 만들던 장인이었습니다. 테니스가 공식 규칙을 갖춘 이듬해, 영국의 라켓 제작자 조지 버시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당시 테니스는 생긴 지 채 1년도 안 된 스포츠였고, 라켓에 어떤 줄을 달아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피에르는 악기 현을 만들 때와 같은 방식으로 콜라겐 섬유를 수천 가닥 정교하게 꼬아 세계 최초의 테니스 스트링을 완성했습니다. 바볼랏이라는 이름이 테니스와 함께 역사에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1925년, 2대 경영자 알베르 바볼랏은 당시 프랑스 테니스를 지배하던 전설적인 네 선수(Four Musketeers) — 장 보로트라, 자크 브뤼뇽, 앙리 코셰, 르네 라코스테 — 에게 알파벳 순서로 라벨을 붙인 스트링 샘플을 건네며 테스트를 요청했습니다. 네 선수 모두가 가장 뛰어난 파워와 컨트롤을 가진 줄로 선택한 샘플 V번은 그렇게 “V Superior”, 줄여서 VS 스트링이 됩니다.
이 스트링을 장착한 네 선수는 1927년부터 1932년까지 데이비스컵 6연패를 달성했고, VS는 그렇게 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100회 이상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함께한 스트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바볼랏이 라켓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당시 라켓 시장은 윌슨과 헤드가 양분하고 있었고, 상급자용 라켓은 얇고 유연한 박스형 프레임이 정답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스트링이나 잘 만들던 회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바볼랏은 그 관습을 정면으로 무시했습니다. 1994년 출시된 바볼랏의 첫 라켓은 선명한 파란색 프레임에 타원형 단면을 채택했습니다. 기존의 사각형 프레임보다 뒤틀림에 강하고 파워 전달력이 뛰어난 설계로 프로에게는 강력한 무기, 동호인에게는 다루기 쉬운 라켓이 될 수 있는 퓨어드라이브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결과는 4년 뒤에 나왔습니다. 1998년 카를로스 모야가 프랑스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그의 손에는 퓨어 드라이브가 들려 있었습니다. 바볼랏의 첫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이었습니다. 스트링 회사의 라켓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2003년 바볼랏은 새로운 라켓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에어로(Aero) 시리즈였습니다. 당시 라켓 공학의 관심은 온통 파워에 쏠려 있었지만, 바볼랏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현대 테니스가 강력한 탑스핀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에어로의 프레임 목 부분은 비행기 날개처럼 설계되어 공기 저항을 최소화했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긁어 올리는 스윙을 할수록 라켓 헤드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라켓에 딱 맞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9살 때부터 바볼랏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라파엘 나달입니다. 그의 상징적인 윈드밀 포핸드와 헤비 탑스핀은 에어로의 공력 설계와 만나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롤랑 가로스 14회 우승, 그랜드슬램 22회 우승 — 그 모든 순간에 바볼랏이 함께했습니다.
나달이 은퇴를 선언한 날까지, 그의 손을 거친 바볼랏 라켓은 약 1,250자루. 소모한 스트링 길이는 약 300km에 달합니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은 선수. 바볼랏에게 나달은 스폰서십 계약 그 이상이었습니다.
나달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그 자리를 잇고 있습니다. 그 역시 퓨어 에어로를 손에 쥐고 모든 코트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한 최연소 선수가 됐습니다. 바볼랏의 선택은 여전히 틀리지 않았습니다.

1998년, 에릭 바볼랏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8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회사를 물려받았습니다. 피에르 바볼랏부터 시작된 5대째 가족 경영은 흔들리는 대신 더 과감해졌습니다. 라켓에 센서를 심어 세계 최초의 커넥티드 라켓을 만들었고, 타이어 회사 미쉐린과 손잡고 테니스화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이 바볼랏의 방식이었습니다.

바볼랏의 사옥 곳곳에는 'No Guts, No Glor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브랜드의 뿌리인 천연 거트(Gut) 없이는 테니스의 진정한 타구감을 느낄 수 없다는 자부심. 다른 하나는 용기(Guts)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스포츠 정신. 150년 전 리옹의 공방에서 소 내장을 꼬던 장인의 정신과, 오늘 코트 위에서 라켓을 휘두르는 우리의 정신이 같은 문장 안에 담겨 있습니다.
바볼랏의 스트링을 끊어본 적 있다면, 우리도 그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Want to know about "Wilson" Tennis
오늘 코트에서 잡은 라켓에는 100년이 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도축장 부산물에서 출발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라켓까지 — 윌슨(Wilson)이 100년 넘게 테니스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유를 알아봅니다. 프로 스태프, Clash,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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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장비 선택, 이제 감이 아닌 데이터로 결정하세요. tennisgear.app이 제공하는 라켓의 스윙웨이트, 강성부터 스트링의 에너지 리턴 수치까지—복잡한 숫자들이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완벽 해설해 드립니다. 나만의 '인생 라켓'을 찾는 과학적인 가이드를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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